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빈 이씨 (문단 편집) == 일화 == 후궁은 자녀를 낳아도 어머니를 자칭할 수 없었다. 후궁에게서 태어났지만 고귀한 왕의 핏줄을 이었기 때문에 신분이 생모인 후궁보다 높고, 친어머니인 후궁보다 왕의 정실인 [[왕비|중전]]을 어머니로 모시는 것이 궁중 예법이었기 때문이다. 왕의 서자·서녀는 무품 하계[* 원래는 정1품이었으나 격상되어 무품이 되었다.]이며, 후궁은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더라도 정1품이다. 그런데 안빈 이씨가 문안 인사를 온 친딸 [[숙녕옹주(효종)|숙녕옹주]]에게 "너"라고 했다가[* 사극에서 흔히 범하는 고증 오류이다. 이를 지킨 몇 안되는 작품이 [[붉은 달(드라마)|붉은 달]]. [[영빈 이씨]]가 아들([[사도세자]]), 딸([[화완옹주]]), 며느리([[혜경궁 홍씨]])에게 존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효종이 죽이네 살리네 하는 걸 [[인선왕후]]가 중재해서 넘어간 일이 있다고 한다.[* 後宮於所産子女不敢呼爾汝盖不敢自母於其子之意而安嬪李氏於淑寧翁主爾汝之, 孝廟將加重罪, 仁宣王后屢請得免焉. 공사견문 전집.]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로 나온 말에 그 난리를 친 것.[* 그래서 안빈 이씨는 조선시대 후궁들은 자기 자식한테도 반말을 할 수 없다는 예시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효종이 얼마나 엄격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비슷한 일화로 [[영조]]의 딸인 [[화유옹주]]는 당시 세자빈 [[혜경궁 홍씨]]와 나란히 앉았다가 당시 대왕대비였던 [[인원왕후]]에게 혼났다.] 안빈에 대한 제사와 관련해서는 숙녕옹주의 남편인 금평위 박필성이 가문의 대종(大宗)인지라 사위 집안에서 안빈의 제사를 지내기가 여의치 않자 대신 외손녀(숙녕옹주의 딸)의 남편인 이수철 가문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러나 정조 무렵에 이씨 집안이 제사를 지내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해져 나라에서 안빈의 제사 비용을 대주도록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2008009_006|#]] [[분류: 조선의 후궁]] [[분류: 1622년 출생]] [[분류: 1693년 사망]][[분류:경주 이씨]]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